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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면접관은 첫사랑"

 


1회: "면접관은 첫사랑"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울리는 구두 소리가 긴장감을 더했다. 서하린은 JK그룹 본사 로비에 들어서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채용 공고가 난 지 단 3일 만에 마감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던 자리. 최종 면접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번에는 꼭..."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린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언니, 오늘 면접이지? 파이팅!]

동생 서하은의 메시지였다. 창백한 병실 침대에 누워서도 언니를 걱정하는 동생을 생각하니 더욱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합격해서 하은이 수술비를 마련해야 해.'

45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하린은 안내된 면접실 앞에서 다시 한번 복장을 정돈했다. 네이비 컬러의 단정한 정장, 깔끔하게 올린 머리, 은은한 메이크업까지. 완벽했다.

"서하린 씨, 들어오세요."

차분한 여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면접실 문을 열었다. 순간 하린의 발걸음이 멈췄다. 넓은 창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강도윤...?'

10년 전, 그녀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던 사람. 지금은 JK그룹의 차기 회장이자 이 면접의 최종 면접관으로 앉아있는 사람.

"앉으시죠."

차가운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하린은 떨리는 다리를 겨우 움직여 면접자 석에 앉았다. 강도윤의 눈빛은 여전히 읽을 수 없었다. 그가 그녀를 알아보았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서하린 씨, 마케팅팀 지원 동기가 궁금합니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공식적인 어투로 질문을 던졌다. 하린은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그저 면접관과 지원자일 뿐이다.

"네, 저는 JK그룹의 혁신적인 마케팅 전략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최근 진행하신 친환경 캠페인..."

전문적인 답변이 이어졌지만, 머릿속은 과거의 기억으로 아득했다.

[도윤 선배, 이번에도 1등이에요?]

[네가 궁금해서 공부가 잘 될 리가 있나.]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가슴이 저렸다. 대학 도서관에서 우연히 시작된 인연. 늘 진지하고 차가워 보였지만, 그녀에게만은 따뜻했던 그 시절의 도윤.

"실무 경험이 부족해 보이는데, 어떻게 극복하실 계획인가요?"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하린은 침착하게 답변했지만, 도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네. 제게 JK그룹은 단순한 직장 이상의 의미입니다. 이곳에서 제 꿈을 이루고 성장하고 싶습니다."

진심을 담아 답했다. 하지만 그 진심 속에는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그리고...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면접이 끝나고 하린은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회사를 나왔다.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셨다.

띠링-

[하은아, 언니 면접 끝났어.]

[어땠어 언니?]

[글쎄... 잘 모르겠어.]

실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오직 그의 차가운 눈빛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며칠 후, 합격 통보를 받았다. 기쁨도 잠시,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병원이었다.

"서하린 씨, 동생분 수술이 예정보다 앞당겨져야 할 것 같습니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셨거든요."

하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직 수술비의 절반도 모으지 못했는데...

그때,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내일 오전 10시, 회장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 강도윤]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합격 통보와 함께 찾아온 그의 호출. 이것이 새로운 시작일까, 아니면 끝일까.

창밖으로 저녁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하린은 10년 전 마지막으로 그를 본 날의 석양을 떠올렸다.

[미안해요, 선배.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날의 이별이 이렇게 다시 만남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운명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하린은 가방에서 낡은 수첩을 꺼냈다. 그 시절 도윤이 써준 메모가 아직도 남아있었다.

'우리의 인연이 여기서 끝이 아니길.'

그의 글씨를 보며 하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네 말이 맞았네요, 선배. 하지만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창가에 기대어 선 하린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은은하게 빛났다. 내일, 그와의 새로운 만남이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갈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10년 전과는 다른 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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