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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내시들은 소변을 어떻게 눌렀나요? 그리고 거세는 어떻게 했나요?

2026.08.19. 10:33:07 | 문서번호: 30576

전체 답변:
[무물보AI]

짧하게 요약해서 답변드리겠습니다.

  1. 내시들은 소변을 어떻게 보았나요?
  • 방식은 거세의 범위(음경만 잘렸는지, 고환만 잘렸는지)에 따라 달랐습니다.
    • 음경(페니스)까지 절제된 경우(중국식 등): 요도 끝부분이 손상되거나 막히는 일이 흔해 자연 배뇨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시술 직후 요도에 금속관이나 쇠꼬챙이 등(대롱·도관)을 삽입해 새로 난 통로를 유지하도록 했고,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면 뺀 뒤 그 남은 구멍으로 소변을 눴습니다. 이 경우 스스로 소변 조절이 잘 안 되어 자주 새거나 냄새가 나는 등 불편이 많았고, 보통 앉아서 배뇨했습니다.
    • 고환만 제거된 경우(조선식 등): 음경은 남아 있으므로 일반 남성과 마찬가지로 서서 소변을 보기도 하고(발기·사정 능력도 일부 남는 경우가 많음) 생활상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사정은 불가능하거나 감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요약: 음경이 남아 있으면 평상시처럼(서서) 볼 수 있었고, 음경이 절제되면 도관을 이용하거나 상처가 아문 작은 구멍으로(보통 앉아서) 배뇨해야 했습니다.
  1. 거세(궁형·환관 시술)는 어떻게 했나요?
  • 지역과 시대에 따라 방법과 범위가 크게 달랐습니다.
    • 중국식(많이 전승된 전통): 음경과 고환을 모두 한 번에 절단하는 방식이 흔했습니다. 출혈·감염 위험이 커서 시술 전 굶기고 따뜻한 밀실에 가두어 준비했고, 아편·술 등으로 진정·부분마취를 시도했습니다. 절단 직후 요도가 붙지 않도록 금속관(대롱)을 넣고 지혈·소독(뜨거운 물에 고춧가루 등), 붕대·압박·보행치료 등 회복 처치를 시행한 뒤 충분한 시간이 지나 물을 많이 마시게 해 강한 소변 배출로 새 요도를 형성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체계화된 방법은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생존율이 높았습니다.
    • 조선식(기록상): 공식적으로는 사사(私私) 거세를 금하는 규정이 있었고, 대부분 음경을 남기고 음낭(고환)만 제거하거나 고환 기능을 없애는 방식이 전해집니다. 고환을 칼로 절제하거나(출혈·감염 위험) 명주실로 오래 묶어 괴사시켜 떨어지게 하는 방법(덜 고통스럽고 출혈 적음)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조선에서는 대체로 음경을 남겼기 때문에 성생활·배뇨가 어느 정도 가능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또한 개에 의해 상해를 입어 사실상 고자가 된 사람들을 내시로 쓴 경우도 전해집니다.
    • 기타 방식: 어떤 지역에서는 고환만 비틀어 제거(이탈리아의 카스트라토 등), 또는 아편으로 마취 후 자르는 방식, 쇠줄로 묶어 썩게 하는 방식 등 다양했습니다.
  • 시술 도구와 회복: 낫처럼 휘어진 수술칼·작은 손칼·금속관(요도유지용) 등을 사용했고, 지혈·소독과 회복기 관리(온실 보관, 물 섭취 제한 등)를 통해 감염과 사망 위험을 줄이려 했습니다.
  • 위험과 결과: 초기에는 무작위 절단으로 요도가 말려들어 사망하거나 감염으로 죽는 경우가 많았고, 시간이 지나며 요도 유지 기술(대롱 삽입 등)과 회복 관리가 발전했지만 여전히 출혈·감염·요실금·만성 상처 합병증·성 기능 변화 같은 심각한 후유증이 흔했습니다. 한편 일부 연구와 기록에서는 거세된 사람이 평균수명 측면에서 차이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합병증과 삶의 질 저하는 분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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