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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갑작스러운 동거"

 


6회: "갑작스러운 동거"

하은이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하린은 병실에서 동생의 회복을 지켜보며 잠깐의 평화를 만끽하고 있었다.

"언니, 이제 괜찮아. 집에 가서 쉬어."

하은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아니야, 언니가 여기 있을..."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도윤이었다.

[지금 바로 나와주세요.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계약 결혼을 하기로 한 이상, 그의 부름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은아, 잠깐만 다녀올게."

병원 로비에는 이미 도윤이 서있었다. 완벽한 수트 차림의 그가 차가운 표정으로 하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오늘부터 함께 살아야 합니다."

갑작스러운 말에 하린은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지금요...?"

"네. 약혼 소식이 곧 공개될 텐데, 따로 사는 걸 들키면 의심을 살 수 있습니다."

도윤의 말은 논리적이었다. 하지만 하린의 마음은 복잡했다.

"하지만 하은이가..."

"병원은 제가 전용 간호사를 붙여두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도윤의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게 계약의 일부라는 사실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짐은 제가 이미 다 옮기도록 했습니다."

"제 집에 가신 건가요?"

"당연하죠. 약혼녀의 짐을 옮기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차갑게 던진 말이었지만, 어딘가 배려가 느껴졌다.

"이제 가보시죠."

도윤의 차는 강남의 고급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하린은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도윤 선배, 나중에 우리도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요?]

[그래,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10년 전의 대화가 떠올랐다. 하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차가 지하주차장에 들어서자 도윤이 말했다.

"이제부터는 CCTV가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행동해주세요."

하린은 긴장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이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여보."

갑작스러운 호칭에 하린은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도윤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도윤이 하린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길이었지만, 이상하게 익숙했다.

"45층입니다."

최상층이었다. 펜트하우스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자 하린은 숨을 들이켰다. 300평이 넘어 보이는 넓은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쪽이 당신 방입니다."

도윤이 안내한 방은 메인 침실과 분리된 게스트룸이었다.

"당신 짐은 전부 정리해뒀습니다. 필요한 게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하린은 조용히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물건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건 생활비입니다."

도윤이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매달 5천만 원이 충전됩니다. 자유롭게 사용하세요."

하린은 카드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까지는..."

"계약의 일부입니다. JK그룹 며느리로서의 품위를 지켜야 하니까요."

차가운 말투에 하린은 결국 카드를 받았다.

"생활 규칙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도윤이 서류 한 장을 건넸다.

각자의 공간은 철저히 지킨다.

식사는 함께하되, 대화는 최소화한다.

외부인 초대 금지

서로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

감정적 개입 절대 금지

마지막 규칙을 읽으며 하린의 가슴이 아려왔다.

"이해하셨나요?"

"네..."

"좋습니다. 이제 옷을 갈아입으세요.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하린은 옷장을 열었다. 그녀의 평소 옷들과는 다른, 고급스러운 옷들이 가득했다.

"이건..."

"제가 준비한 겁니다. JK그룹 며느리에게 어울리는 옷들이에요."

하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는 진짜 그의 약혼녀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식탁에 마주 앉자 도윤이 와인을 따랐다.

"평소에는 이 시간에 저녁을 먹습니다."

"네..."

"그리고 내일부터는 회사에 나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린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미 사직서는 제출해두었습니다. 앞으로는 JK그룹 며느리로서의 역할에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하린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온 회사를 이렇게 그만두게 될 줄은 몰랐다.

"내일은 가족 식사가 있습니다."

"네?"

"어머님께서 당신을 보고 싶어 하세요."

하린의 손이 떨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옆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도윤의 말에 잠시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곧 그것도 연기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식사가 끝나고 하린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넓고 호화로운 방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차가웠다.

휴대폰이 울렸다. 세리였다.

"하린아! 갑자기 회사 그만둔다는 게 무슨 일이야?"

"세리야... 나중에 설명해줄게."

"설마... 그 사람 때문이야?"

하린은 잠시 침묵했다.

"응..."

"하린아... 괜찮은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선택한 거니까."

전화를 끊고 하린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야경이 발아래 펼쳐져 있었다.

[띵동]

문자가 왔다.

[내일 아침 9시, 준비하고 계세요. - 강도윤]

하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시작이다. 진짜 약혼녀로서의 삶이...

밤이 깊어갔다. 하린은 잠들지 못하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옆방에서 도윤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도 잠들지 못한 걸까?

문득 10년 전이 떠올랐다.

[도윤 선배, 우리 나중에 같이 살게 되면 어떨까요?]

[글쎄... 아마 매일 싸우다가 화해하고 그러지 않을까?]

[정말요? 저랑 싸우실 거예요?]

[너랑은 화내고 싶어도 화낼 수가 없을 것 같은데...]

하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의 달콤한 상상이 이렇게 차가운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새벽녘, 겨우 잠이 들려는 순간 도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린아..."

꿈인가? 아니면 정말 그가 부른 걸까?

하린은 눈을 감았다. 이제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해선 안 된다. 이건 그저 계약일 뿐이니까.

아침이 밝았다.

하린은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도윤이 준비해준 원피스가 몸에 잘 맞았다.

"준비됐나요?"

문 밖에서 도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문을 열자 도윤이 서 있었다. 완벽한 수트 차림의 그가 하린을 바라보았다.

"잘 어울리네요."

차가운 칭찬이었지만, 하린의 가슴이 떨렸다.

"이제 가시죠. 어머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도윤이 하린의 손을 잡았다.

"긴장하지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따뜻한 말이었지만, 하린은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연기라는 걸.

계약의 일부라는 걸.

하지만 그의 손길은 10년 전과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따뜻하고, 안정감 있고...

'이대로 계속 연기하면서 살 수 있을까...'

하린은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녀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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