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령김씨(금령 김씨라고도 표기될 수 있음)에 관해 요약해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개요
금령김씨는 일반적으로 김녕(金寧)·금녕(衿寧) 계열로 알려진 김씨 계통과 연관되며, 역사적·문헌적으로는 김녕 김씨(본관 김녕, 현재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와 혼동되거나 같은 계열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조는 고려 때 평장사에 오른 김시흥(金時興)으로 전해지며,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라는 계보를 주장합니다.
시조와 기원
시조 김시흥은 고려 인종 때 벼슬(평장사 등)을 지내고 묘청의 난 등 여러 난을 평정한 공로로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졌다고 전합니다. 이후 본관이 김녕에서 김해(金海)로 바뀌었다가, 조선 후기로 와서 다시 김녕으로 복관된 역사가 있습니다. 한편 가락국(수로왕) 계열의 김해 김씨와 구별하기 위해 선김(先金, 가락국계)·후김(後金, 김시흥 계)으로 나누어 부르기도 했습니다.
본관(관향)과 지리적 분포
본관은 김녕(현재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이며, 전통적인 집성촌은 경남·경북·대구·전라·충청 등 전국 여러 지역에 분포합니다. 통계상(20002017년 자료) 김녕·금녕 계열 합산 인구는 수십만 명(약 50만58만 명대)으로 본관별 상위권 규모입니다.
분파(파성)
김시흥의 두 아들(김향·김순) 계열로 시작하여 여러 파(약 34파)가 형성되었습니다. 대표적인 파로는 충의공파(김문기), 영돈녕공파(김준), 분성군파(김응수), 대사성파·전서공파·송암공파 등 다수의 관직명 기반 파가 있습니다.
역사적 사건 및 특징
조선 전기에는 사림·신진세력과 얽힌 정치사에 의해 일부 가문이 침체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충의공 김문기(단종 복위 운동 관련) 사건으로 가문에 큰 타격이 있었고, 이후 복권·복관 과정에서 본관 표기가 복잡해졌습니다. 일부 문중은 김해 본관을 유지한 경우도 있어 같은 계열이라도 본관 표기가 달라지는 사례가 있습니다.
대표 인물(역사적 · 현대)
족보·항렬·문중 활동
각 파별로 항렬자(돌림자 표기)와 항렬표가 전승되어 있으며, 중앙 종친회 및 각 파의 대종회·전자대동보 등으로 문중 관리를 합니다.
인구 통계(참고)
출처와 집계 연도에 따라 수치가 다르지만, 20002017년 사이 통계에서 김녕·금녕 계열 합산 인구는 약 50만58만 명 수준으로 보고된 바 있습니다(본관 표기 차이로 인구 집계 차이가 발생함).
참고 자료
위 요약은 관련 문헌·족보 기록과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