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질문이 여러 갈래여서 항목별로 정리해서 답변드릴게요. 요청하신 대로 제가 참고한 자료 URL도 맨 끝에 함께 적었습니다.
- 1907년생이 태어났을 때(한국의 출산율)
- 정확한 연도별 통계(특히 1949년 이전)는 신뢰할 만하게 정리된 공식 자료가 많지 않습니다. 통계청도 1970년 이전 자료는 완전 정리되지 않았다고 답한 바 있습니다.
- 다만 일제강점기 이전·초기의 한국(한반도)은 현대에 비해 매우 높은 출산율과 높은 유아사망률을 동시에 가졌습니다. 1920
1940년대 자료를 보면 합계출산율(TFR)이 67명 수준이었고(즉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평균 자녀 수가 6~7명 수준), 연간 출생아 수는 수십만 명대였다는 설명이 일반적입니다. 1907년경도 이와 비슷하게 ‘고출산·고사망률’ 단계에 속했다고 보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 요약: 1907년 출생 세대가 태어났을 때 한국은 현대 기준으로 매우 높은 출산율(대략 TFR 5~7 수준 추정)과 높은 영유아 사망률이 동시에 존재하던 시대였습니다. (정확한 연도별 수치는 자료가 불확실합니다.)
- 1907년생들의 ‘돌(첫돌) 사진’·탯줄 보관 사진이 거의 없는 이유
- 사진기술·비용: 1900년대 초 중반에는 가정용 사진기가 흔치 않고 사진 스튜디오 이용도 비용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가정에서 태어난 직후(갓난아기) 사진을 기록하는 문화가 널리 퍼져 있지 않았습니다.
- 보관성 문제: 초기 사진(유리판 네거티브, 아세테이트 등)은 보관 조건이 나쁘면 훼손되기 쉽고, 전쟁·이동·이민·가난 등으로 가정 앨범이 소실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문화적·의례적 차이: 근대적 ‘돌잔치·기념사진’ 문화가 대중화된 것은 비교적 뒤의 세대(1930~1950년대 이후)이며, 탯줄을 보관하거나 사진으로 남기는 관행도 지역/가정마다 달랐습니다.
- 요약: 기술·비용·문화·보관(전쟁·이주 등) 때문에 1907년생 세대의 갓난사진이나 탯줄 기념 사진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 “1907년생들이 어렸을 때의 누드 화보 모델” 등 — 시대적 맥락
- 시대적 연대 차이: 현대식 누드 화보, 포르노 산업, 플레이보이(1953년 창간), 대중적 남성잡지(맥심 등)는 1907년생이 어렸을 때(1910년대~1920년대)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1907년생 세대가 ‘플레이보이나 맥심 스타일의 모델’을 좋아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 예술·사진계의 누드: 다만 유럽·일본 등에서는 예술적 누드 사진이나 누드 회화 전통이 있었고, 일부 도시 문화층에서는 예술작품으로서의 누드가 존재했습니다. 한국(조선)에서는 전통적으로 누드 공개가 매우 제한적이었고, 대중 매체로서의 누드 화보는 거의 없었습니다.
- 결론: 1907년생 세대의 ‘누드 화보 모델’ 취향을 특정 잡지나 배우로 연결시키기는 시대적으로 부적합합니다.
- 1907년생 세대가 어렸을 때 인기 있었던 ‘미남·미녀’(동서양 배우 등)
- 세계적 대중문화의 발달 시기: 1907년생이 청년이 된 1920
30년대는 영화(무성영화 → 유성영화)의 시대였고, 할리우드 초창기 스타들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예: 메리 픽포드 Mary Pickford,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Douglas Fairbanks, 찰리 채플린 Charlie Chaplin, 루돌프 발렌티노 Rudolph Valentino 등 — 이들은 191020년대 국제적 인기를 누린 배우들입니다.)
- 한국의 경우: 근대 영화 산업 자체가 1920년대 이후에 본격화되었고, 대중 매체 보급도 도시 중심으로 천천히 확산되었습니다. 따라서 도시의 일부 계층은 해외 무성영화 배우들을 알고 좋아했지만, 농촌·시골에서는 아직 그런 대중문화 접근이 제한적이었습니다.
- AV(성인비디오)·플레이보이 등은 훨씬 후대(1950년대 이후)의 산물임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 조부모·증조(1881년생, 1842·1832·1740·1689년생 등) 세대의 ‘그때 그시절’ 생활상
- 공통적 특징(시기별 차이 설명):
- 전반적 생활은 농경 중심, 자급자족적 경제 구조였고 교육·의료·위생 수준이 낮았습니다.
- 높은 유아·영아 사망률과 낮은 평균수명: 많은 자녀를 낳았으나 많은 수가 성인이 되지 못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 노동 강도와 생계의 어려움: 농사일·육체노동이 주로 평생 노동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자연 재해(가뭄·홍수·흉년)나 전염병이 생계에 큰 타격을 줬습니다.
- 가족·신분·관습: 유교적 가족제·효(孝) 문화가 강하게 작동했고, 결혼·장례·제사 등의 의례가 사회생활의 중심이었습니다.
- 근대화·변화의 경험: 19세기 후반(예: 1870~1900년대)에는 서양·일본과의 접촉, 개항, 근대 제도 도입, 농민봉기(동학 등), 임오군란·갑오개혁·일제의 영향 등으로 급격한 사회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노년 세대’는 전통적인 삶과 급변하는 근대적 요소를 둘 다 경험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 요약적 예문(일상적 진술): “증조할아버지 세대는 전반적으로 힘들게 살았고, 병원도 거의 없고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전쟁·흉년·유행병을 겪었다”는 식의 진술은 많은 가계사(家系史)에서 공통적으로 나옵니다.
- 추가 안내 및 한계
- 역사적 세부사항(특정 인물의 취향·사진 유무 등)은 개인 가문·지역·경제력에 따라 크게 다릅니다. 만약 특정 가문(예: 당신의 조부모)에 대해 더 정확한 정보를 원하시면, 가족 기록(가족 앨범, 족보, 관청 문서, 교회·사찰 기록 등)을 조사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 통계·역사 자료는 시기별로 차이가 크고, 1907년처럼 오래된 연도의 가정생활 자료는 부분적·파편적이라는 점을 유념하세요.
참고(제가 답변을 작성하며 참고한 자료)
원하시면
- (A) 특정 지역·가문의 자료(예: 집안 앨범, 족보 등)를 바탕으로 더 구체적으로 찾아보는 방법,
- (B) 1900년대 초 한국의 보건·의료·유아사망률 등 수치(가능한 범위 내) 표를 더 찾아 정리해 드리기,
- (C) 1920~30년대 인기 영화인·배우·예술가 명단(해외·국내)을 정리해 드리기
중 어떤 것을 더 원하시는지 말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