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위원부(구미위원회로도 불림)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미국·유럽 담당 외교기관입니다.
핵심 내용
- 공식 명칭: 구미주차한국위원회(Korean Commission to America and Europe). 1919년 8월 25일 워싱턴 D.C.에 이승만이 설치했고, 같은 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편입되어 임시정부의 미주·유럽 쪽 외교·선전 창구 역할을 했습니다.
- 주요 업무: 미국·유럽 여론 환기(강연·간행물 배포), 의회 홍보 활동, 한인 공채·모금(독립공채·애국금 등)과 교민 조직, 한미 우호단체(한국친우회) 조직 등. 파리·필라델피아 사무소 등을 관할했고 워싱턴 사무소가 본부였습니다.
- 활동과 성과: 한·일의 만행을 폭로하고 미국 내 여론을 환기시켜 의회에 한국 문제가 상정되는 등 성과가 있었으나 미 행정부의 공식 인정은 받지 못했습니다. 1921년 워싱턴 군축회의(워싱턴회의)에 한국 문제를 제기하려 했지만 공식 참석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 갈등과 변화: 설립·운영 과정에서 이승만과 상하이 임시정부 사이에 권한·재정 문제로 갈등이 잦았고, 임시정부는 1925년에 폐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지지 세력에 의해 활동이 이어지다가 1928년경 재정 문제로 약화되었고, 1941년 주미외교위원부로 복설된 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주미한국대사관(현 주미대사관)으로 전환되었습니다.
- 주요 인물: 이승만, 김규식, 서재필, 임병직, 윤치영 등.
간단한 연표
- 1919년 8월 설립(워싱턴) → 1919년 9월 임시정부 소속화 → 1919년 공채 발행·모금 활동 → 1921년 워싱턴 활동(군축회의 관련) → 1925년 임시정부의 폐지령(그러나 계속 활동) → 1941년 주미외교위원부 복설 → 1948년 주미한국대사관으로 전환.
더 자세한 정보와 출처
원하시면 위의 각 자료를 바탕으로 더 상세한 연표나 주요 인물·문서(예: 독립공채표, 홍보물 목록) 정보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